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문단 편집) ==== 김정일의 생활 미화 ==== *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염장무와 구운 감자 몇 알, '무우오가리(무말랭이)와 절인 오이, [[까나리]]'[* 또는 달랑 '소금에 절인 무' 하나]가 든 소박한 줴기밥([[주먹밥]])을 먹어가고 얇아질대로 얇아져 추위가 스며드는 단벌솜옷을 입으면서 야전승용차 안에서 쪽잠을 자가며 인민들을 걱정하며, 이후에도 식량난이 해결되지 않아 하루 한 끼의 죽만 먹고 있는 데다가 그 죽도 인민들이 배불리 먹으라고 나눠주었다 -('''반박''') "줴기밥을 먹어가고 차 안에서 쪽잠을 잔" 것 자체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사실이다.]] 다만 그 줴기밥은 100여명의 여자들이 일일이 손으로 깨지지 않은 것으로 골라낸 최고급 쌀에 볏짚을 태워 만든 찰기가 넘치는 밥과 동유럽산 기름, 뉴질랜드산 소고기, 연어알, '''[[캐비아]]'''로 만들어졌기에 개당 재료값만 45달러가 넘었으며 김정일이 타고 다닌 차는 실제로는 야전승용차가 아닌 [[벤츠]]였으니, 고난의 행군 시기에 "소고기와 캐비아가 든" 줴기밥을 먹어가고 '벤츠'차 안에서 잠을 잤다고 하면 얼추 맞는 셈이다. - 물론 '''김정일의 생전에도'''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의 실생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유추하고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인민들 굶을 때 쪽잠에 줴기밥 먹었다면서 배는 왜 그렇게 나왔나?"라고 조롱했으며,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truth_kim_family/kim_dynasty-01252010113747.html|#]] 주민들 사이에서는 '장군님의 쪽잠은 푹신한 곳이요, 줴기밥도 영양가가 다 들어간 것일 것이다'는 말도 돌았다. [[https://www.dailynk.com/%EC%83%A5%EC%8A%A4%ED%95%80-%EC%A6%90%EA%B8%B0%EB%8D%98-%EA%B9%80%EC%A0%95%EC%9D%BC%EC%9D%B4-%EB%B0%B0-%EA%B3%AF%EC%95%84-%EB%B3%B8/|#]] 심지어 2018년에는 김정일 사망 7주기 추도문에 나온 쪽잠에 줴기밥 소리를 듣고는 고난의 행군 시기 수백만의 주민들이 굶어 죽어도 위에서는 호의호식하면서 잘살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쪽잠과 줴기밥으로 한 생을 보냈다는 추도문 내용이 어이가 없다며 '''대놓고 분노한(!)''' 사람까지 나왔다. [[https://www.rfa.org/korean/in_focus/spotlightnews/fn-ab-12172018141645.html|#]] 그러나 북한은 이렇게 '쪽잠에 줴기밥'이 '남조선'은 물론 자국 국민들에게 조롱을 받고 있는데도 정신을 차리기는 커녕 오히려 후술하듯 [[김정은]]에게도 이를 완전히 베낀 선전을 적용하고 있으며, 무려 [[https://www.yna.co.kr/view/AKR20230216024500504|'''2023년'''에도]] 쉬지 않고 '쪽잠에 줴기밥' 선전을 하는 중이다. * 김정일은 "[[위선|잠은 쪽잠이 제일 달고 밥은 줴기밥이 제일 맛있다.]]"는 교시를 남겼다. - 북한에서는 2022년 이 말에 대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탈북|충성의 결심]]을 가다듬게 하는 이 격언은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끝없는 열정과 무한한 헌신성을 이야기하며 노동당시대의 새 격언으로 길이 전해질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 김정일은 고생을 겪는 인민들 생각에 줴기밥에 손도 대지 못한 채 [[현지지도]]에 오른 적과 식탁에서 한 공기 죽을 놓고도 수저를 들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반박''') 김정일의 식탁에는 한 공기 죽 대신 20~30개에 달하는, 세계 각지의 다양한 최고급 요리들이 올라와 있었다. * 김정일은 어릴 적에 어머니가 끓여주던 강냉이죽을 잊지 못해 성인이 된 후에도 강냉이죽, 그것도 순 통강냉이를 푹 삶은것밖에 다른 가공을 하지 않은 통강냉이죽을 즐겨먹었다. 이는 어릴 때부터 [[백두산 밀영]][* 이는 '''북한이 날조한 생가이다.''' 김정일은 실제로는 소련 [[우수리스크]] 출신이다.]에서 성장한 김정일의 혁명적 신념과 의지가 담겨 있고 억천만번 죽더라도 혁명을 하겠다는 항일유격대의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이 어려있는 음식이다. 즉, 죽은 먹을 것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음식인 것이 아니라 김일성의 사랑이 담기고 김정일의 혁명정신이 담긴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박''') 물론 김정일은 죽을 먹는다고 해도 [[샥스핀]]이 들어간 죽만을 먹었다. * 이 세상 위인들 가운데 김정일 동지처럼 배를 곯아본 위인은 없을 것이며, 이 세상 위인들 가운데 김정일 동지처럼 먹을 것 입을 것 때문에 고생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박''') 이는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자라며 '험난한' 유년기를 거친 끝에 '위인'이 됐음을 선전하기 위한 표현인데, 물론 본인은 해외에서 직수입한 최상급 재료들로 만든 웬만한 한국인들도 이름을 못 들어 본 초호화 음식들과 손으로 한톨한톨 엄선한 것만 고른 최상급 쌀로 만든 [[이밥]], 가장 수질이 좋은 샘에서 전용 취수구로만 받은 샘물, 문자 그대로 설탕과 개고기를 비료로 준 과일로 구성된 식사만을 죽을 때까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배불리 먹었으며, 연회하다가 남긴 음식들은 '''[[수양제|모조리 땅에 파묻어버렸다고 한다.]]''' 일반적인 북한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 때 굶주림에 시달린 나머지 풀뿌리와 나무껍질도 모자라 살기 위해 [[흙]]과 [[인육]]까지 먹어야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진지하게 [[사이코패스]]로 보일 정도로 복에 겨운 투정이리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이 [[2001년]] 7~8월에 러시아를 순방할 때 한 식투정을 보면 60세 중년이 아닌, 편식하는 어린아이에 가깝게 보일 정도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406100070|출처]] * 김정일은 일꾼들에게 인민을 위해 더 많이 일하고 싶은데 하루가 24시간밖에 안 되는 것이 한스럽다고 말했으며, 새벽 1시를 초저녁으로 여길 정도로 밤낮없이 쉬지도 못하고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해가면서도 일하는 것을 휴식으로 삼으며 인민들을 위해 일했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시였으며 매일 새벽 3시, 4시까지 집무를 보시고 이 나라의 첫새벽을 남먼저 맞으시였으며, 생전에 하루한시도 편히 쉬지 못하시고 초강도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어오시였다. * 김정일은 사격장에서도 쪽잠을 자면서 총소리까지 자장가로 여길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고, 이른 새벽 전화를 하다가 수화기를 든 채 쪽잠에 들기도 했다. [[http://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61329|#]] - 아이러니하게도 김정일이 격무에 시달린 것 자체는 '''사실이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에 의하면 김정일은 새벽에 종일 술을 마시고도 숙소에 돌아와서 바로 서류를 봐야 했다고 하고, [[이한영]]에 의하면 김정일이 하루에 보는 문서의 양은 1,000페이지가 넘었다고 한다. 이들이 김정일의 사치에 대해 누구보다 생생히 증언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다. 다만 김정일만 격무에 시달렸던 것은 절대 아니며, 애초에 격무에 시달리는 것은 업무를 다른 이들에게 분담하기 어려운 독재자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이오시프 스탈린]]만 해도 [[대숙청]]+본인의 [[일 중독]] 기질로 인해 그 방대한 [[소련]]의 업무 대부분을 본인이 도맡아야 해서 하루에 14시간씩 일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스탈린은 김정일과는 달리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품위만 유지하는 수준의 검소한 생활을 했다.] * 김정일의 옷차림은 전세계에서 가장 유행하는 패션이며,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김정일의 옷차림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반박''') 김정일은 생전에 [[https://www.segye.com/newsView/20090816000819|워스트 드레서로 악명 높았다.]] 물론 김정일의 [[인민복]]도 '얇아질대로 얇아져 추위가 스며드는 단벌솜옷'이 아닌 서양제 고급 원단을 해외 주재 북한 대사관이 공수해와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든 비싼 옷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